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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존셜] 피그말리온 - 6
+   [sherlock/┗피그말리온]   |  2011/08/20 15:05  




영국답지 않게 맑은 날. 햇살이 들어오는 창은 마치 빛을 막으려는 듯 발버둥 치는 커텐으르 굳게 닫겨 있었다. 햇빛을 싫어하는 셜록을 위해 존이 손수 주문했던 암막 커튼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며 플랫에 들어오는 모든 빛을 차단했다. 그러나 미쳐 다물어지지 못하고 벌어진 커튼사이로 한줄기 빛이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언제나 셜록의 잡동사니 같은 책들이 잔뜩 쌓여 있던 책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빛을 잃은 플랫의 책상에는 잡동사니는 온데간데없고 존이 버려놓고 간 노트북과 2년 동안 셜록이 존에게 받은 소소한 선물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인을 잃은 노트북의 화면에는 짐이 보낸 문제가 떠올라 있었다. 그 문제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셜록의 눈빛이 매섭다. 문제의 내용은 발품을 팔아야해 시간이 걸리는 문제기는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내용 뒤가 문제였다.

Sexy, 보고 있지?
나 자기를 위해서 쉬운 문제를 준비 했어.
당연히 자기라면 금방 해결할거라고 믿어.
하지만 시간은 초큼 걸릴 거야.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지?
물론, 빨리 풀면 내가 그에 합당한 선물을 줄게.
시간 보여?
빨리 해결하면 할수록 우리의 조니보이를 만날 확률이 올라갈 거야.
물론, time out이 되면 기회가 하나씩 하나씩 날아가는 거야. 쉽지?
그럼 우리 자기 건투를 빌어.

만나게 해준다는 말이 마치 선심 쓰는 듯 한 그 말이 셜록의 심기를 긁어대기 충분했다. 더욱이 그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고난 뒤였기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내리 누르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군번줄을 만지작거렸다.

가운데가 우그러진 네모난 그것에는 총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존의 이름이 적힌 군번줄은 존이 셜록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언제나 사건 사고에 치이는 셜록을 보다 못한 존이 자신이 죽을 뻔 했을 때 총알막이가 되어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해준 것이라고 행운의 군번줄이라며 셜록이 다친날 목에 걸어준 그것이었다. 존이 이 플랫에 남겨 놓고 간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였다.

흘낏 벽의 시계를 확인한 셜록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렇게 어영부영할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6시간. 현재 시간이 12시이니 동선이 긴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면 빨리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가벼운 자켓을 걸친 셜록이 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돌아섰다. 노트북이 있는 탁자위에 가지런히 놓인 물건들 중 곰돌이 모양의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가득 담긴 건 수제사탕으로 유명한 파파버블의 내츄럴후레쉬믹스였다. 언제나 식사를 잘 하지 않는 셜록을 위해 존이 직접 주문해서 선물로 주었지만, 포장을 뜯어보지도 않고 구석에 쳐 박아 두었다가 최근에 발굴(...)한 물건이었다. 커다란 통에 담겨 있기는 했지만, 식사를 하지 않고 있을 때 잔소리 마냥 들리는 환청에 가끔씩 꺼내 먹은 덕에 제법 양이 줄어 있었다. 그 양을 확인한 셜록은 딱 1개만 꺼내들고 플랫을 나섰다.


존 왓슨은 군의관 출신에 성하지 않은 다리를 가진 어딜가나 평범해 보이는 외모를 한 사람이다. 단순히 그의 외면만 본다면 실용성을 선호하는 옷차림이라던가, 주위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한 성격이라던가, 둥글둥글한 외모는 그를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는 그러한 사람들의 기대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단 하나 그의 유일한 취미를 제외 한다면 말이다.

발단은 단순했다. 그저 존이 TV 광고에서 이번에 열리게 된 그리스 로마신화 전시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위험과 스릴이 넘치는 곳에서 뛰어다니고, 문학 작품과는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존의 의외의 관심에 짐이 전시회 티켓을 구매하는 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티켓 구매였다면 괜찮았겠지만... 글쎄 짐 모리아티라는 사람이 그렇게 단순한 사람일 리가.

“짐.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데.”

존은 짐의 손에 끌려 온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횡한 내부에 조금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자고로 미술관이란 조용하지만 그 안에서 미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분위기 속에서 그림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느낌을 더 잘 받기 마련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존의 경우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그림이라던가, 그림을 보면서 대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면서 구경하는 것을 좋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썰렁한 전시관이라니. 아니, 그 전에 이 전시관을 통째로 빌리는 것이 가능은 한 거야?

이제 제법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 익수해진 존에 짐은 그가 말하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의외로 단순한 감이 없잖아 있는 존이고, 그와의 벽이 많이 허물어진 만큼 존의 생각을 읽지 못할 만큼 짐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게 보지 말아 줄래 Honey? 내가 좀 바쁘잖아. 그래서 시간을 맞추려니 오늘이 딱 좋겠더라고. 그런데 오늘 미술관이 휴관일이라고 하잖아. 보고 싶다고 했으니까 보여주고는 싶고 그러니 어쩌겠어. 빌려야지. 안 그래?”

내 노력을 이렇게 매도하다니 나 너무 슬퍼. 라는 말까지 능청스럽게 하는 짐이다. 존은 저 말에 진실이 반도 섞여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넘어가 준다. 생각해서 빌렸다는데 뭐라 한소리 하기도 껄끄럽고 저렇게 두 눈 반짝이면서 온몸으로 칭찬해 달라는데 거기서 화를 낼 수 있을 만큼 뻔뻔하지도 못했다.

“응. 그래 생각해 줘서 고마워.”

존의 말에 짐이 그의 손을 잡았다. 일부러 깍지를 끼며 맞잡는 손에 짐의 손바닥이 그대로 와 닿는다. 차가울 거라고 생각한 그의 손이 의외로 뜨겁게 느껴진다는 사실에 세삼 셜록이나 짐이나 둘 다 사람은 맞는 구나라는 조금은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존은 순순히 그의 손에 잡힌 채 미술관을 천천히 둘러 보기 시작했다.

짐은 미술관을 둘러 보면서 존의 의외의 면에 굉장히 신선함을 느끼고 있었다. 의대에서 공부만 하고 군대에 가서는 병자만 돌보고 셜록과 플랫메이트일 때에는 그를 돌보기 바빴을 존은 의외로 신화에 대해 굉장히 조예가 깊었다. 유명한 신화가 아니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신화 이야기들을 나직한 소리로 부드럽게 이야기 해주면서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것이 굉장히 따뜻하다.

그렇게 전시관을 한바퀴 다 돌고 천천히 구경하고 싶다는 존의 말에 짐을 고개를 끄덕였다. 본의 아니게 큐레이터 역을 한 존이니 혼자 그림을 감상하고 싶을 만도 했다. 느릿한 걸음으로 그림들 사이를 걸으며 가끔씩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는 한참이고 그 그림을 바라보는 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묘하게 그의 그런 모습은 차분한 존의 공기와 무척 어울렸다. 그림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 질투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 무언가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은 보기 드문 구경거리인 만큼 짐은 질투따위 얌전히 접어 넣고 그런 존의 얼굴을 구경하기 바빴다.

느릿한 걸음으로 하나, 둘 그림을 지나던 존의 걸음이 문득 한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 이제까지 그림들과 달리 완전히 작정을 한 건지 몸을 돌려 팔장을 낀 채 가만히 그림만을 바라본다. 벽에 나란히 걸려 있는 2장의 그림은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였다. 머리에서부터 인간으로 변해가는 갈라테이아가 자신에게 입맞춤하는 피그말리온을 끌어 안고 키스하는 장면이 그려진 2장의 그림. 마치 똑같은 장면을 그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앞뒤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그림은 오직 하나 큐피트의 존재 유무만이 다를 뿐이었다.

존의 시선이 큐피트의 화살에 가만히 멈춰있다. 그리고 그 시선이 옮겨진 건 큐피트 화살의 끝이 향하고 있는 갈라테이아였다.

“짐.”

딱히 대답을 바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걸 아는 짐은 가만히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여전히 시선을 그림에 고정한 채다.

“큐피트가 없는 갈라테이아가 피그말리온을 사랑 했을까?”

언제나 이 그림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처음에 그린 앞면은 큐피트가 없다. 그러나 이후 그가 그린 그림에는 마치 일부러 인 듯 큐피트가 그려져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인간이 된 갈라테이아에 대해 존은 그녀가 피그말리온을 사랑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랑은 동등한 사이에서 가능한 게 아닌가? 조물주와 피조물주의 사이의 사랑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 봤자 그건 상대에 대한 복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존의 생각이었다. 그런 의도에서 장 레옹 제롬의 그림에 있는 큐피트는 존의 생각을 그대로 베껴 놓은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현실에 큐피트가 존재할 리 없고, 셜록에 대해 자신이 걸었던 기대는 말 그대로 동화속의 꿈일 뿐이었다는 걸 세삼 깨달았다. 스스로 소시오패스라 부르며 괴물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셜록이 자신을 ‘인간’으로 받아 들인 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었던 거다. 현실에서 허상을 쫓은 자신이 너무 과하게 자신을 믿고 꿈을 꾸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슬픈 존이었다.

꽤 함축적인 질문이었지만, 짐은 존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 역시 소시오패스라고 말하는 셜록과 같은 과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Freak의 범위에 들어가는 인간이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셜록의 생각을 짐이 모를 리 없다. 그저 짐 모리아티라는 사람이 셜록보다 조금 더 유연성 있고,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갈라테이아도 그 나름 아니겠어?”

뒤에서 끌어안으며 존의 어깨에 턱을 걸친 채 그가 바라보는 그림을 응시한다. 반쯤 조각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갈라테이아가 긴 팔로 피그말리온을 끌어안고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모습은 부러울 정도로 다정하다.


팔장을 낀 존의 손을 가만히 잡은 짐이 그의 손을 끌어 당가 손등에 입맞춘다.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지는 손은 여기저기 박혀있는 굳은살로 그리 곱지는 않지만, 그 온기만큼은 존의 심성만큼이나 따스하다.

“하지만 자기. 그거 알어? My Dear은 고작해야 석상에 발정하는 피그말리온에게 비교되기에는 너무 고상한 분자라는 거. Honey는 그런 변태보다는 오히려 프로메테우스가 어울리지 않아?”
“무슨 소리야 그게.”

뜬금없는 그의 말에 타박을 하지만 짐은 그저 쿡쿡 웃었다. 어떤 의미로 그가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짐나 과히 나쁜 기분은 아닌만큼 존 역시 그저 그의 웃음을 미소로 받아 준다. 그렇게 평온한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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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왔습니다 이 소설에 모티브가 된 그림이!!!!

요렇게 2장의 그림인데요 장 레옹 제롬이 그린 그림입니다

앞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처음 그린 그림이구요

뒤에서 키스하는 장면과 큐피트가 있는 그림이 2번째 그림이예요

이걸 보는 순간 앗 이거다! 라는 생각과 함께 이 소설이 구상 된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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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존셜] 피그말리온 - 5
+   [sherlock/┗피그말리온]   |  2011/08/20 15:04  




짐는 현재 기분이 굉장히 좋은 상태였다. 런던에 와서 3달이 슉- 날아가 버린 것에 대해 존은 좀 당황했을 뿐이지 크게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생일 선물을 사 달라는 말에 ‘필요한 게 있기는 한 거야?’라는 말로 가볍게 받아치기는 했지만, 크게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고민하는 기색이 보여 오히려 존이 어떤 것을 사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 심리를 자극했다. 모란을 대동시켜 백화점으로 보내고, 셜록의 속을 들쑤실 CD를 보낸 그는 6개월 전 주문한 상품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듣고 물건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왔어.”
“에? 벌써 온 거야?

계획과 달리 굉장히 빨리 돌아온 존에 짐은 낭패감을 지우지 못했다. 존이 오기 전에 상품이 먼저 도착해야 하는데 계획과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짐은 계획 수정 필요성을 느끼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존을 데려다준 모란이 하는 인사를 대충 받아준 짐은 무언가 들고 있는 존을 바라봤다. 짐의 시선이 종이봉투에 쏠리자 존은 어색하게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묘하게 거슬린다고 느낀 짐은 찬찬히 존의 얼굴을 뜯어 보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이지만, 분명 무언가 이상했다.

“존, 무슨 일 있어?”
“아니, 별로.”

짐의 말에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말했지만 심란함은 가시지 않았다. 레스트레이드를 만나고 그와 잠시 말을 나누었지만, 그와 한 대화는 잠시 말을 나누었다고 하기에는 그 타격이 컸다. 셜록이 아이린과 헤어지고 난 뒤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는 그 말. 그리고 최근에는 미친 듯이 일만한다는 레스트레이드의 말은 존에게 괴로움을 주기 충분했다. 아이린과 왜 헤어진 지 알 수 없지만 그 파장이 크다고 생각하자 그것만으로도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본인의 점수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지 알 리 없는 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말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스민 그늘에 잠시 눈이 가늘어 졌다. 그래도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에 그는 금방 표정 정리를 하며 그의 손을 잡아끌며 경쾌하게 물었다

“흐응.. 그래? 그런데 뭘 산거야?”
화제를 전환하자 조금 안도하는 모습에 짐은 셀쭉이 웃었다. 그런다고 해서 그가 누굴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를 리 없다.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모란을 불러 알아 낼 수 있었지만, 존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존은 짐의 화제 전환에 안도하면서도 조금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를 믿기로 한 만큼 무어라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건 봉투에 담긴 선물이 뭔지 궁금해 하는 짐한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냐는 건데


... 사놓고 보니 선물의 의미가 참 그랬다. 단순히 어울릴 것 같아서 산건데 덜컥 사놓고 보니 선물의 뜻이 상당히 거슬렸다. 그렇다고 저렇게 두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데 안 주기도 껄끄러웠다. 참, 곤란했다.

“별건.. 아닌데.”

껄끄러워하는 존의 표정이 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엇이지 모르지만 굉장히 뜸을 들이는 걸로 봐서는 뭔가 굉장한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섬주섬 꺼내 들지만 무언가 펼쳐보이기 싫어하는 기색 역력한 행동에 짐은 싱긋 웃으며 존의 손에서 물건을 받아 냈다. 어어, 하는 순간 손에서 쏙 빼난 짐이 포장을 풀기위해 종이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들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둘 사이에 길게 늘어 졌다.

“보스.”

... 모란, 너 한 대 맞자.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끼어든 모란에 짐의 눈동자가 매서워진다. 날카롭게 노려보는 눈에도 모란은 자신이 잘못한 게 전혀 없다는 표정이다. 그 당당함에 별일 아니면 죽어!라는 눈빛을 하면서도 표정관리만큼은 확실히 했다.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쳐다보는 자신의 보스에 모란은 속으로 존에 대해 감탄-제멋대로인 보스가 이렇게까지 자기 관리를 하게 만든 것에 대한 존경-을 하며 대답했다.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물건을 꺼내든 모란은 받자마자 어서 꺼지라는 짐의 표정에 꾸벅 인사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여기 더 있어 봤자 솔로 염장 지르는 것만 볼 테니 그로서도 그 편이 더 좋았다.

“상자?”

짐이 건네받은 건 조금 크기가 있는 상자였다. 검은색에 은박으로 무언가 적혀 있었는데 깔끔한 외부 디자인이라 무엇이 들어 있는지 추리해 내기는 조금 어려웠다. 아니, 그 전에 은박으로 적힌 글만 읽어도 그 상품이 무엇인지 알기에는 명품에 대한 관심이 없는 존이었기에 모를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뒤면 우리 Honey 생일이잖아. 내가 그래서 준비해 봤지. 미리 도착해 버렸지만 괜찮지?”

생일이라고 서프라이즈 선물따위 줄 짐이 아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그때 선물을 또 다른 걸 준비하면 되니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 짐의 생각과 달리 존은 지금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짐이 준비한 거라면 꾀나 고가의 그것도 구하기 힘든 물건일 텐데 그것과 자신이 사온 선물과는 무지 비교된다. 이걸 줘야 하나 말아야 하는 극도의 갈등이 생겼다.

그냥 주지 말어? 아니아니, 그래봤자 안주면 버릴 건데 안주기도 그렇고. 저렇게 좋아하는데 안줄 수도 없고.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짐은 씩 웃어보였다. 무슨 고민이 하는지 눈에 보인다. 대체 뭘 샀길래 그런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만큼 고민해서 샀다는 거니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풀어 봐도 돼?”
“...어... 음...”

어물어물 거리다 고개를 끄덕거린다. 허락도 떨어졌겠다 짐은 신나서 포장을 뜯었다. 포장을 뜯자 길죽한 하드커버로 된 포장상자가 나타났다. 아니, 상자라기보다는 납작한 것이... 넥타이나 손수건 같은 것을 포장하는 납작한 하드포장커버였다. 존의 얼굴을 살짝 쳐다보니 어색한 웃음을 매단 존의 얼굴이 보인다.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떼어 내고 하드커버의 입구를 열자 미드나이트블루색상의 넥타이가 눈에 들어 왔다. 3개의 푸른색의 사선이 그라데이션 식으로 그려져 있는 넥타이에는 은색의 큐빅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큐빅은 그 크기게 다양해서 마치 하늘의 은하수를 그대로 옮겨 빛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넥타이와 함께 세트인 듯 손수건이 곱게 개켜져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물건들은 너무 가격이 비싸서... 그래도 선물인데... 싶어서..”

중얼중얼거리는 존의 말에 짐의 두 눈이 반짝였다. 자신이 준 카드는 분명 한도가 굉장히 높은 프리미엄 카드였다. 그런데 가격이 비싸서 선물을 사는데 고르기 어렵다는 말은 즉.

“혹시 이거..”
“그.. 선물이니까 직접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성실한 존은 짐이 준 카드로 선물을 살 수 없었다. 결국 돌아다니다가 고른 것이 넥타이였다. 하지만 넥타이가 얼마나 비싼지 6개월 동안 차곡차곡 쌓여 있던 연금을 탈탈 털어도 겨우 살 수 있었다. 명품이라는 것들은 쓸 때 없이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면서 샀지만, 그래도 눈에 딱 들어왔던 물건은 다른 상품들 보다 사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고, 짐이 가지고 있는 양복들과도 꽤 잘 어울릴 디자인이어서 바로 구매한 것이었다.

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동의 쓰나미가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아무리 비싼 선물을 많이 받아도 지금까지 이런 기분은 받아본 적이 없던 짐이었던지라 어떻게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셜록이랑 게임을 하면서 즐거웠던 것 따위는 트럭째 갖다 버려도 좋을 만큼?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에게 해 준 적도 없고,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사람도 없었다. 정말 짐 모리아티의 삶에서 ‘처음’이라는 건 죄다 존이 가져가는 것에 대해 굉장히 신기했지만 싫지 않다.

“한번 해봐도 돼?”
“물론.”

자기가 하고 있던 넥타이를 냉큼 풀어버린 짐이 목에 넥타이를 걸친다. 옷깃을 세우고 목에 넥타이를 걸친 짐을 보던 존이 손을 들어 짐의 손에 잡힌 넥타이 자락을 빼낸다. 뭔가 싶어 멀뚱히 바라보는데 조금 어색한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준다. 니트나 스웨터를 즐겨 입고 대부분의 옷이 티셔츠인 존은 넥타이를 멜 일이 잘 없었다. 그런 만큼 손의 움직임은 어색했지만, 조심스러운 손길이 나쁘지 않았다.

“존.”
“응?”

넥타이에 집중하고 있던 존이 고개를 들자 딱 하고 시선이 마주친다. 부드럽게 눈웃음 짓는 짐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입술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와 닿았다. 온기가 전해지는 입술에 그대로 굳어버린 존.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짐을 바라보는 눈에는 놀라밍 가득했다. 하지만 딱히 거부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짐의 혀가 존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

이제까지 가벼운 입맞춤은 급습하다 시피해서 자주 있었던 지라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급습이 아니라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도 시선을 그대로 맞추던 입맞춤은 한 번도 없었던 만큼 존은 넥타이를 쥐고 있던 채로 굳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지만 눈꼬리가 접히며 눈웃음치는 짐의 표정에 자신도 모르게 뭐라 말하려는데 츄♡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 졌다.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

짐은 존이 도망가게 만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급하게 하다가 도망 간다만 그것보다 큰 낭패는 없다. 마치 가랑비에 조금씩 젖어 가듯이 그렇게 익숙해 지다보면 절대로 자신을 버리지 못하게 될거다. 존은 다정하니까. 제멋대로에 변덕 심한 짐이지만, 그는 범죄자문가였고 범죄란 자고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인내와 끈기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진득하게 물고 늘어지기를 잘했고, 그는 자신의 그런 장점을 존을 손에 넣는데 십분 이용할 생각이었다.

싱긋 웃으며 능청스럽게 넘기는 짐에 존도 어어 그러다가 어 그래. 라고 대답한다. 뭔가 민망해야 하는데 순식간에 지나간 순간이라 어버버 거린다. 하지마나 그 얼굴에는 거부감도 없고, 그저 놀람만이 가득했을 뿐이고, 적응하지 못해 어색하는 정도였다. 그런 모습에 귀엽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 짐이 넥타이를 쥐고 있는 존의 손을 잡아 마저 매듭을 묶을 도록 도왔다. 자신도 모르게 어어 하는 사이 넥타이도 다 메어주고 셔츠깃까지 내려준 존에게 짐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묻는다

“어때 어울려?”
“..어. 무척..”

무언가 홀린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대답한 존은 그제야 생각 난 듯 손수건을 챙겼다.

“이건 자켓의 포켓에 넣어서 다니라고 같이 산거야.”

어떻게 해서든 어색함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존을 모르는 척 넘어가주면서 짐은 진심으로 셜록에게 감사했다.

셜록 자기. 정말정말 고마워. 내가 자기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진짜 노력 할테니까 이쪽으로는 절대로 눈 돌리지 말아주길 바래. 그러면 그 눈을 파내 버릴테니까.

무시무시한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도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미소를 짓는 짐에 존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선물을 사줘도 뜯어보지도 않던 셜록과 비교하자면 단연 돋보이게 점수 따는 짐이다.

“그런데 선물이라는 그 상자 속에 든 건 뭐야?”
“이거? 한번 열어 볼래?”

짐이 건네주는 상자를 열자 코발트 블루로 된 상자 안에 부드러운 벨벳으로 감싸여진 시계2개가 나란히 자리한 모습이 드러난다. 금색으로 테두리가 된 시계는 달의 주기율과 로마숫자로 되니 숫자판. 달력과 요일표등이 아름답게 세공된 시계는 세계 3대 명품 시계 파텍필립의 주문 상품이었다. 그러나, 그런걸 알 리 없는 존은 한눈에 보이게도 척하니 ‘나 명품이예요!’라는 말을 하는 시계를 보고 짐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음에 들어? 1년에 2개밖에 생산되지 않는 한정 품이야. 작년에 주문했는데 작년에는 주문이 끝나서 금년에 도착한 거지. 양면으로 되어 있으니까 한번 꺼내 봐.”

1년에 2개 한정이라는 말에 존은 손이 떨렸다.

그럼 대체 얼마나 비싼거란 말이야!

파텍필립으로 말하자면 세계최고의 명품 시계로 짐이 주문한건 파텍 필릅의 시계 중에서도 스카이문이라 불리는 상품이었다. 양면으로 된 시계로 앞면은 기존의 상품과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뒤편은 푸른색으로 되어 있고, 달의 궤도와 모양, 은하수의 움직임까지 나타내는 독특한 구조의 시계다. 엄청난 초고가 상품인데다가 파텍필립의 메니아들 사이에서는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힘든 상품이었지만, 짐이 이 상품을 구매한 이유는 단순히 시계뒷편의 푸른 빛이 마치 존의 눈동자 색과 같아서 마음에 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너무 비싸 손목에 둘러볼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존의 왼손을 잡고 시계를 둘러 준다. 무개를 본다면 그리 무겁지도 않은데 무언가 손목에 족쇄가 채워진 느낌이다. 이렇게 비싼 걸 들고 다니는 것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존에게 짐은 너무 잘 어울린다고 말하며 즐거워한다.

“역시 내 생각 대로 잘 어울려. 나랑 세트로 산거니까 꼭! 하고 다녀야 해. 알았지?”

패션에 관심 없고 실용성 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존은 짐을 만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급품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지만, 매일 눈에 도장 찍는 시계까지 이렇게 받게 될 줄 몰랐던 만큼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뒤이어 지는 말에 그는 조용히 그 생각을 포기 했다.

“커플링으로 하고 싶었는데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서. 시계로 대체. 그러니까 난 양보한 거야.”

꼭 하고 다녀야 한다는 눈으로 다시 한 번 다짐을 받는 짐에 존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자기 물건으로 존을 꾸며가는 짐은 셜록과의 게임으로 조금 바빠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조금은 짜증이 생겼지만, 자신의 돈으로 선물을 사고 손목에 자기꺼라고 도장까지 꾹 찍어 뒀으니 한동안을 몰아붙이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상태에서 조금 더 친밀해 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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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선물로 산 시계는 바로 이겁니다

세계 최고의 시계명품인 파텍필립의 스카이문 시리즈. 하얀쪽이 앞면이고 파란 쪽이 뒷면입니다

미뉴트리피트는 매 시,분 마다 각각 다른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퍼페추얼 캘린더는 2100년 까지 날짜를 기억하여 자동적으로 날짜를 맞추는 기능

뚜르비옹은 시계가 한 자세로 오래 있을 때 시간을 조금 더 정확하게 맞추기 위한 기능

위 세가지 기능이 집약된 초고가 시계로 하나당 12억 정도 합니다

1년에 2개만 생산되구요 음.. 저도 찾아봐서 알게 된거지만 잘 팔지도 안는데요..ㅠㅠ

커플링 대신 선물한 시계니까 뭐 어련히 잘 알아서 구한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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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존셜] 피그말리온 - 4
+   [sherlock/┗피그말리온]   |  2011/08/20 15:03  



아이린과의 일이 있은 후 셜록은 니코틴 패치와 마약에 절어 살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마이크로프트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봤지만, 셜록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레스트레이드까지 동원되어, 둘 다 끊지 않으면 일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겨우 그를 만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셜록에 약에서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한 장의 CD를 받았다. 그날은 존이 사라진지 6개월 하고도 딱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 집안에 틀어 막힌 채 제대로 식사도 하지 않고 있는 셜록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CD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체통에 넣어져 있는 걸 들고 온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그 행동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자신을 쫓아내지 않고 있다는 것에 안도 했다. 고작 그 사실에 안도하게 된 현실이 조금 암울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셜록, 내용을 보는 게 어떻겠니?”
“상관 마. 마이크로프트. 할 일이 어지간히도 없는 모양이지? 당장 꺼져.”

독설을 내뱉으며 노려보는 셜록에 마이크로프트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없는 시간을 내어 와도 동생은 여전히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 어떻게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이 그는 자신이 이토록 무능력한 사람이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지만, 그 고민은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중간에 자신이 찾을 수 없을 만큼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고 사라진 존에게 가장 큰 탓이 있기는 했지만 그걸 문제삼을 만큼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의 행동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었을 테니까.

“건강 챙기거라.”

절대로 들을 리 없는 말을 인사로 남기고 돌아서는 마이크로프트는 움직이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플랫을 떠났다.

마이크로프트가 떠나고 CD를 노려보던 셜록이 몸을 일으켰다. 기계적으로 움직여 CD를 컴퓨터에 넣은 셜록은 마우스를 움직여 영상을 틀었다. 자그마한 노트북의 화면에 금방 환한 영상이 떠올랐다.

우습게도 그 영상에는 셜록이 쫓아내 존이 잔뜩 찍혀 있었다. 모리아티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는 모습이라고나, 둘이 체스 게임을 한다거나, 나란히 해변을 걷는 등의 모습은 연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다정해 보였다.

그 모습에 셜록의 두 눈이 핏발이 설 만큼 붉어진다. 분노 가득한 눈동자에는 모리아티에 대한 살심이 가득 했다. 자신이 쫓아내 놓고도 존의 모습에 셜록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실핏줄이 튀어나올 만큼 꽉 쥔 주먹은 모리아티를 향한 증오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게 한참 영상이 지나가고 팍 하고 화면이 꺼지더니 검은 바탕에 하얀 글자가 떠오른다

Hey, 자기.
고마워 덕분에 내가 Honey랑 요즘 즐거워.
하지만 이걸로 만족하기에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 알잖아 안 그래?
왜 자기가 my dear을 버렸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
오. sexy. 어리석은 자기의 오판에 Cheers!
So, I’m give your present. enjoin it!

-와장창!!!!

화면이 끝나기 무섭게 셜록의 손에 휩쓸려 바닥으로 내팽겨친 노트북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장렬히 산화 했다. 거미줄 같이 조각조각 부서저 흉측한 줄무늬가 그려진 모니터에 차가운 표정의 셜록의 얼굴이 비친다.

“짐 모리아티.”

하나하나 증오를 담아 뱉어내는 목소리에는 깊은 증오가 스며있었다. 자신이 오판했다는 것에 대해 셜록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중간에 끼어든 모리아티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은 이레귤러. 단순히 6개월 동안 마이크로프트가 입을 다물고 있다고 생각 했었던 자신의 안일함에 셜록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서 심호흡을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가에 대해 자문자답해본다. 사실, 그건 전혀 필요 없는 물음이었다. 존 왓슨을 만난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소시오패스인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머문다는 것부터가 그에게는 치명적이었고, 그 사실이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철저한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그의 정신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셜록은 원치 않았다 또한, 존으로 인해 ‘괴물’이라 불리던 자신이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박탈감과 함께 무력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었다가 새로 재창조되는 것 마냥 그건 너무도 고통스럽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실질적인 가치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끌려가는 것이 고통스러워 잘라 냈다. 천천히 변해가는 모습이 나쁘지 만은 않았지만, 이제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셜록 홈즈’가 변해 간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공포 그 이상의 것이었다. 미성숙한 감정을 억눌러온 대가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셜록은 감정적으로 너무도 미성숙했고, 그러한 자신의 약한 점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이린을 이용하고, 자신에게 애정 그 이상을 가지고 있던 존 왓슨을 저 멀리 쳐내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그건 내 꺼야.”

내가 아닌 타인과 함께 웃고, 울고, 행복해 하는걸 두고 볼거라고 생각해? 천만해. 그 높은 도덕적 관념이 널 어디까지 받아줄거라고 생각하는거지 짐 모리아티. 넌 결코 가지지 못해.

어둠속에서 차갑게 빛나는 셜록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고작해봐다 단 한 번의 실수.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지 못하는 셜록은 모리아티가 던진 장갑을 기꺼이 주워들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어떠한 절망을 맛보게 될지 깨닫지 못한 채.

존은 화려한 복장을 사람들이 쇼핑을 하기 위해 오가는 헤로즈 백화점의 명품관에 데면데면한 얼굴로 서있었다. 짐의 손에 잡혀 갑작스럽게 런던으로 돌아 온 데다가 자신의 계산과 달리 3달이 그냥 슉하고 사라져버리는 진귀한 경험을 한 존은 아직 적응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곧 생일이라며 생일 선물 사 달라는 짐의 애교 섞인 조름(?)에 못 이겨 그가 찔러 넣어주는 플래티넘 블랙 카드를 들고 쇼핑을 하러 나온 것 이었다. 물론, 이곳으로 오게 된 건 그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경호원으로 따라온 모란 대령 이하 4인의 의견이었다.-것이었고, 처음으로 명품관에서 쇼핑하게 된 존은 심각한 난간에 부딪혀 있었다.

손이 떨리는 카드를 들고도 존은 쉽게 선물을 고르지 못했다. 어떤 걸 사줘야 할지도 감이 전혀 오지 않는 상태라 존은 그저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명품관을 한바퀴 돌아본 존은 손가락이 꼬물락거림을 느꼈다. 대체 숫자 0이 몇 개나 달린 건지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모란의 말에 의하면 짐이 준 카드의 한도액이라면 이곳에 있는 신상품을 다 사들여도 한도액 초과따위는 무시해도 될 만큼 넉넉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게 더 무섭다.

“어떤 걸 사야 하지...”

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이상, 일반적으로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상대에게 해 주는 것에 대해서는 다 해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존은 엄청나게 고민했다.

돈도 많고 고급 취미생활에 자신이 가지고 싶은건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는 상대에게 대체 뭘 사줘야 기뻐하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딱히 눈에 드는 물건이 없다. 다들 고급으로 한성깔 하게 생긴 채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존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짐에게는 어울릴지 몰라도 ‘존 왓슨이 주는 선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흐으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다시 찬찬히 쇼윈도를 살펴보며 걷는다. 다시 한 번 한바퀴를 둘러보자 대략 2가지가 눈에 들어 왔다. 시계와 넥타이. 어느 쪽이 더 좋을까 가늠해 보지만 시계 쪽 가격이 만만치 않아 결론은 나온 거나 다름없었다. 시계 쪽이 더 끌리는 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물인데 짐이 준 카드로 사기는 조금 걸리는 존이었다.

시계 매장 앞에서 어쩔까 고민하기를 한참, 그냥 넥타이로 하자고 결론내린 존이 돌아서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닥터 왓슨?”

런던에게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리스트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남자. 그레고리 레스트레이드 경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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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존셜] 피그말리온 -3
+   [sherlock/┗피그말리온]   |  2011/08/20 15:02  




영화의 스토리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멜리니가 쓰러지고, 애슐리가 사랑한 사람이 그녀라를 것을 알아치란 장면이 거대한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애슐리와 스칼렛 사이에 오가는 대화. 그건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이 진실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허상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Sexy가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자기가 봤을 리 없겠지?”

모리아티는 진심으로 셜록이 저 장면을 봐야 한다고 생각 했다. 존은 알 수 없겠지만, 모리아티는 셜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존을 쫓아냈는지 지금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셜록과 모리아티 둘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도.

어깨에 스륵 기대오는 무게감에 모리아티는 존이 편하게 잘 수 있도록 기대게 해주었다. 손 끝에 감기는 부드러운 밀빛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자신이 먹인 수면제로 깨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잠든 상대를 만지는 손에는 배려가 가득 묻어 있었다. 사실, 존은 매일 저녁 잘 자지 못했다. 그것이 3달이나 지속되었고, 차차 나아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매달 오늘 날짜가 되면 잘 자지 못했다.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이 날은 플랫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온 날이고, 그건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그 날만 되면 악몽으로 날을 지샜다.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악몽에 짓눌려 결국 스스로도 어떻게 하지 못하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존은 다음날이면 넋을 놓기 일 수였다. 우연히 영화를 보다 잠이 든 존이 내내 곁에 있어준 것에 편한 밤을 보낸걸 알게 되어 이렇게 웃기지도 않을 일을 벌이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 나름대로도 운치 있다고 생각하는 모리아티였다.

“정말... 내 처음이라는 건 죄다 우리 자기한테 해보는 것 같아.”

가만히 존의 이마에 키스한 모리아티는 움찔 하는 존의 어깨를 도닥였다. 아마도 악몽을 꾸는 모양이다. 따뜻한 온기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악몽을 덜 수 있도록 그렇게 모리아티는 한참을 존을 도닥였다.


나른함에 존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무언가에 포근하게 감싸여 있는 느낌은 굉장히 따뜻해서 보호 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귓가에 울리는 무언가 일정한 소리가 마음에 안정을 준다. 따뜻한 온기가 마음에 들어 조금 더 안으로 파고든 존은 순간 머리에 스치는 ‘온기?’라는 생각에 눈을 반짝 떴다.

뭐니 이거?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분명히 심장소리! 아니아니 이 집에서 심장소리를 낼 거라고는 모리아티 뿐인데?

순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온 몸이 잔뜩 경직 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기 위해서 눈을 떴는데. 이런, 눈앞에 살색의 향연이다.

왜! 왜! 눈앞에 살색이냐고!

몸이 굳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존. 잔뜩 굳은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자기~ 깼으면 일어나지?”

양 팔을 벌려 존을 품안에 꼭 안은 모리아티가 볼에 쪽 하고 베이비키스를 날렸다. 품에 안기자 맨 살이 그대로 닿는 느낌에 그대로 굳어버린 존이 볼에 닿는 느낌에 그대로 쩌저적 금이 갔다.

“모리아티!!!”
“아이. 자기 이제 짐으로 부른다더니?”

내가 언제!!!

바둥바둥거리며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쉽지 않다. 분명히 영화를 봤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맨몸-그나마 바지를 입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지만-끌어안고 쪽쪽 거리는 짐에 존은 얼굴에 열이 올랐다.


한참을 바둥거리던 존은 결국 포기한 건지 얌전히 품에 안겼다. 의외로 빠른 포기에 오히려 모리아티쪽이 의아해 졌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근성의 소유자가 고작 이걸로 빠르게 포기한다? 뭔가 석연치 않은 생각에 존에게서 떨어지자 그의 긴 한숨이 들려 왔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로 쳐다보더니 무겁게 입을 연다.

“모리아티, 한 가지 물어 볼게.”

이제까지 존이 능동적으로 무언가 한 적이 없었던 만큼 그 한마디에 모리아티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날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 거야?”

그대로 직구.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대한 질문에 모리아티는 허점을 찔린 얼굴로 존을 바라봤다. 셜록의 일로 억지로 자신을 추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존의 입에서 저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다.앞가림하기도 막막할 텐데 저런 질문이라니. 존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모리아티의 표정에 존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의문을 확실시 하고 싶었다. 짐 모리아티와 존 왓슨 사이에는 셜록 홈즈 이외에는 연결고리가 없었다. 그는 확실히 제멋대로에 변덕스러운 사람이지만,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면 버릴 장난감으로 소꿉놀이를 하는 거라면 더 이상은 사절이다. 그가 주는 따뜻함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자신이 지독하게도 경멸스러웠고, 그의 변덕에 상처입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셜록 홈즈와 연관되는 사람들과는 이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그런 존의 복잡한 마음을 알리 없는 모리아티는 조금, 아주 조금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저런 소리를 하다니!

물론 모리아티는 자신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알고 있었고, 그 변덕스러움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그는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그에게는 범죄자문하는 것 보다 더 재미있었다. 물론, 그 상대가 존 왓슨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현재 그는 존의 질문이 대단히 불만스러웠다.

“자기 너무 한거 아니야? 어떻게 그렇게 냉정한 소리를...”

마치 금방이라도 차인 여자 같이 세상의 불행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배신당한 여자(...)를 연기하는 모리아티에 할 말이 없어진 존. 도무지 알수 없는 그의 의도에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꺼내 들었다.

“난 더 이상 ...셜록... 홈즈와 관련 있는 사람도 아니고, 범죄 자문가인 짐 모리아티라는 사람과 따로 친분 관계를 맺을 만큼 범죄에 대해 능통하거나, 사건 추리에 뛰어난 사람도 아니야. 그저 퇴물 취급되는 임시 의사일 뿐이지. 처음에 재미 삼아 데리고 왔다고 해도 이제 내 상태도 그나마 나아졌으니까 먼저 의도를 밝혀 줬으면 하는데?”

셜록 홈즈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 조금은 망설이는 듯 하면서도 ‘셜록’이 아니라 그의 풀네임을 부르는 모습에 모리아티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어느 정도 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있다는 거고, 그것에 대해 모리아티는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또한, 현재 지금 자신이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Honey. 너무 하는거 아니야? 난 언제나 말하고 있었는데.”

창문으로 투영되어 들어오는 햇살아래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체에 하얗게 빛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난 뒤 호기심에 윗옷을 벗겨 놨던 자신의 판단에 만족하며 모리아티는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진 존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시선을 맞춘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움찔했지만, 위협을 느끼지 않은 존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그의 행동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모리아티는 그 답지 않게 웃어 보인다. 장난기 스민 웃음도, 놀림 섞인 웃음도, 비웃음이 걸린 웃음도 아닌 그저 순수한 웃음. 제임스 모리아티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은 미소는 의외로 그와 잘 어울렸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면 정말로 슬플 것 같은데...”

느릿하게 깜빡이며 시선을 마주쳐 오는 모리아티에 존은 가만히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 안에 비치는 자신.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에게는 어색하기만 한 눈빛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언제나, 언제나 자신이 셜록을 바라보던 것과 같은 눈동자. 마치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시 현상에 빠르게 눈을 깜빡인 존의 얼굴위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 모리아티?”
“Yes, my dear.”

모리아티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달콤한 목소리. 하지만 의외로 잘 어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존은 뭔가 홀린 기분이 들었다. 셜록에게 거부당하고 제 발로 걸어 나왔다고 보쌈 당했는데 거기서 고백이라니. 그것도 셜록의 숙적에게? 이렇게 재미없는 블랙코미디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무언가 우울해졌다. 그리고 이제까지 이렇게 자신에게 애정을 쏟아 부은 모리아티에 대한 생각도 정정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굉장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존의 도덕적 관념을 보자면 모리아티는 존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인간이었다. 물론, 셜록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적어도 범죄를 일으키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에 대해 퍼즐과 같이 풀면서 자신의 지루함을 달랬기에 모리아티보다는 셜록이 존의 도덕적 관념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 한다면 거의 모든 부분-존의 취향, 성격, 행동, 생활방식 등등-에 있어서는 모리아티 쪽이 존과 일치했고, 그와의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변덕스러움이 셜록에 대한 고민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는 건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 사람의 마음은 ...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아...”

자신이 뱉어 내고도 씁쓸함이 몰려오는 말에 존은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지금까지 이곳에 있으면서 생겼던 일들을 떠올리자 입안에서 신물이 올라온다. 이미 이곳에 적응해 버렸으면서도 마음은 셜록에게 있다고 말하는 자신이 치가 떨리게 싫었다. 아예 이 감정을 잘라내 버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존이었다.

두 눈을 감아버린 존의 얼굴에서 그의 생각을 읽은 모리아티는 샐쭉이 웃었다. 존은 다정하다. 그리고 다정한 사람에게 약하다. 지독히도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에 자책하는 모습까지도 좋았다. 자책한다는 건 이미 이쪽으로 반쯤 넘어 왔다는 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만으로도 모리아티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완전히 그를 손에 넣는건 결코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그 눈동자 가득 자신이 들어찬 모습을 본다면 그건 또 다른 희열을 줄 것이 분명했다. 존 왓슨은 ‘심장을 뛰게 만들어 주는 존재’임에 틀림 없다는 것을 그는 확신했다.

모리아티는 다정히 팔을 뻗었다. 맨살에 닿아오는 온기가 마음에 든다. 어깨의 상처는 상당히 거슬리지만 그것을 포함해서 전부 존 왓슨이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꽤나 심각하게 빠져 들었다는 걸 의식하며 모리아티는 고개를 숙여 그의 귓가에 속사였다.

“당장은 아니라도 상관없는데 Dear? 지금은 그저 짐이라고 불러 주면 돼.”
“...모리아티.”
“No. Jim please.”

이름을 불러달라는 말에 존은 두눈을 꾹 감았다. 마치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 당하는 느낌. 하지만 싫지 않은 그 강요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 짐.”

작은 소리였지만, 그 부름을 들은 짐이 와락 존을 끌어 안는다. 화끈하게 와 닿는 온기에 놀라물러나려 하지만 그의 팔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맨살이 와 닿는 느낌과 함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그대로 전해져 오자 어쩌지 못한 존이 짐을 어쩌지 못한 채 어색하게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피부에 와 닿는 존의 감촉에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짐은 소리 없이 킬킬거렸다. 이것으로 자그마하고 사랑스러운 닥터가 손에 들어 왔다. 호기심에서, 관심으로 관심에서 애정으로 애정에서 사랑으로 발전하는 그 과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해준 유일한 인간. 하지만, 셜록 홈즈가 있는 이상 짐은 안심 할 수 없었다. 존 왓슨의 세상에는 오직 자신만 있어야 했다.

So, sexy. we restart Game.
are you 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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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존셜] 피그말리온 - 2
+   [sherlock/┗피그말리온]   |  2011/08/20 14:59  





모리아티는 지금의 상황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셜록이 버린 존 왓슨을 주워 올 때까지만 해도 그저 한번 찔러볼 생각이었고, 그에 대한 관심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순수한 의문이었지만, 관심이 애정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제일 처음 이곳으로 데리고 왔을 때는 주위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을 만큼 마음이 망가져 있었다. 억지로 추슬려서 정상적으로 보여야 하는 셜록이 없자 그대로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넋 놓고 앉아 있는 존을 이리저리 휘둘러 그나마 반응하게 만드는 데만 해도 3달이 걸렸다. 그리고 그대로 페이스에 휘말려 버린 존은 갈 곳 없는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이곳에 그대로 멈춰버렸다.

‘6개월 만에 이정도로 좋아질 지는 몰랐지만 말이지.’

존은 3개월분의 기억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곳은 1년 내내 25도의 따뜻한 온도가 유지되는 모리아티 소유의 섬이었고, 달력이나 방송을 보지 못하는 이곳에서 존이 날짜를 판단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주지 않았다. 그저 꼬박꼬박 손가락으로 세어서 날짜를 인식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셜록이라는 존재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괴로운 것이겠지만 그런 것에 연연할 모리아티가 아니었다. 단지 그는 자신의 숙적이 셜록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를 버린 그 멍청한 판단에 조소를 지울 수 없었다.

“Dear. 고전 영화 보지 않을래?”

존과 함께 보기 위해 준비해 온 필름을 꺼내든 모리아티가 테라스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존을 불렀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웅크려 앉은 채 해가 사라진 새카만 바다를 텅빈 눈으로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더니 빛이 돌아온다. 모리아티는 느릿하게 움직임과 함께 선명한 빛이 돌아오며 영롱한 빛을 머금은 눈을 보는 순간이 주는 그 짜릿함을 즐겼다. 그 두 눈에 자신만을 담고 바라보는 시선은 그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웠다. 경계나, 불신, 경멸이 섞이지 않은 오롯이 모리아티 자신만을 담고 있는 그 눈동자는 이제까지 자신을 저렇게 똑바른 눈으로 바라본 사람은 없었던 만큼 그 무엇보다도 그에게 안정을 주었다.

“무슨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거의 매달에 한번씩 일정한 날 모리아티는 영화를 보자고 했다. 왜 영화를 보자고 하는지 알수 없었지만, 하릴 없이 시간만 보내고 할 일이라고는 바다를 멍하니 보거나 책을 읽는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존은 그나마 그 날이 유일하게 인간다운 문화생활을 누리는 날이었다. 고전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모리아티의 고전영화 선별은 의외로 괜찮았고, 대작들 뿐만 아니라 독립 영화까지 그 장르도 다양했다.

“이런 영사기와 필름을 어디서 구하는 거야?”

돌아가는 게 신기한 골동품 영사기를 바라보는 존의 눈에 감탄이 떠올랐다. 옛날 영화관에서나 이용되었을 법한 영사기와 커다란 필름을 능숙하게 연결한 모리아티에 존은 조금은 그에 대한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제멋대로에 변덕 심하고 범죄 자문가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는 꽤나 불성실한 남자지만, 같이 생활해본 결과 그는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었다. 취미도 고급스러워 서재는 3층으로 된 층을 통째로 뚫어 거대한 도서관을 방불케 만들었고, 책도 대부분 초판본으로 이루어진 고서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 내용도 다양해서 인문, 사회, 과학 등등 희귀서적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외에도 영화 취미에서도 고급스러움이 잔뜩 묻어났는데, 지금은 구하기 힘든 희귀 필름들을 소장하고 있고, 각 필름에 맞는 영사기들도 다양하게 구비해 놓고 있었다. 그런 소소한 것부터 취미로 모으는 무기류나, 고미술품 등등의 것들을 따지고 들자면 왜 자문범죄가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막대한 부를 쥐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려면 이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어? 디지털도 좋지만, 영사기의 고전적인 맛은 별로 살지 않으니까.”

그래 너 잘났다.

쯧하고 혀를 찬 존이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영사기를 켠 모리아티가 자연스럽게 존의 옆에 앉았다. 피부의 온기가 맞닿아지는 거리에 조금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존은 그러려니 하고 영화에 집중한다. 싫다고 밀어 내 봤자 뱀같이 칭칭 감겨올 모리아티니 티내지 않는 게 그가 살 길이었다.


존이 떠난 플랬은 기다렸다는 듯 아이린이 차지했다. 아니, 그녀가 차지하기 위해 짐을 싸들고 들어 왔지만 그녀는 보기 좋게 내쫓겼다. 끔찍할 정도의 독점욕과 소유욕의 화신인 그녀는 플랫에서 존의 그림자를 모두다 지워버리기를 원했고, 그런 그녀와 사사건건 부딪히던 셜록은 결국 그녀를 내팽겨 쳤다.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뭐가 말이지? 아이린 애들러.”
“난 당신 연인이야!!”
“부인은 아니지.”

쌀쌀맞은 셜록의 대답에 아이린이 눈앞에 놓인 책을 집어 던졌다. 던진 책에 부딪혀 와장창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창문. 셜록은 그런 소음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소파에 쪼그려 앉은 채 두 손을 맞대고 있었다.


마치 파충류 같이 온기하나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라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영혼 속까지 까뒤집어 보는 것 같아 그녀는 더욱 발작적으로 소리 쳤다.

“난 당신 약혼녀야! 내가 당신에게 이런 대우 받아야 할 이유가 없어!”
“네가 원하는 건 홈즈가겠지. 아이린 애들러. 난 분명히 말했어. 얌전히 있는다면 아이린 홈즈가 되게 해주겠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그걸 먼저 어긴 건 네 쪽이지. 끌려나가고 싶지 않다면 내 눈앞에서 당장 꺼져.”

차가운 셜록의 말에 아이린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런다고 그 다리 저는 병신이 돌아올 것 같아?! 네가 내쫓았는데?! 웃기지마!! 시작은 네가 했지만 끝내는 건 내가 끝... 꺄악!!!”

그대로 마이크로프트가 휘두른 우산에 맞은 아이린이 바닥에 흉하게 널부러졌다. 등뼈를 고스란히 맞은 그녀가 아픔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자 그는 사람을 시켜 끌고 나가게 시켰다. 저주를 퍼부으며 끌려나가는 그녀의 지독한 모습이 문이 닫힘과 동시에 사라지자 마이크로프는 긴 한숨을 쉬고 소파에 앉은 셜록을 바라봤다.

“멋지구나. 그 작은 닥터를 쫓아내고 겨우 플랫에 들어앉힌 게 저런 천박한 여자라니.”

마이크로프트의 비꼼에도 셜록은 미동도 없다. 그저 그의 시선은 그 너머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무언가 분명한 ‘존재’가 잡혀 있지만, 그건 현재 이 플랫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속이 시원하니?”
“뭐가 말이지?”
“닥터를 버린 것.”

버려? 누가 누구를?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닥터 존 왓슨. 자신의 유일한 지기이자, 조수이고, 이해자인 남자.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플랫 메이트며 셜록 홈즈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었던 존 왓슨. 셜록은 존을 버리지 않았다. 그저, 그가 제 발로 이곳을 걸어 나간 것이다.

“헛소리 하려면 꺼져.”

아직도 어리기만 한동생에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이크로프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존 왓슨이라는 사람이 셜록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고 생각 했을 만큼 그는 셜록에게 헌신적이었고, 셜록의 양심적인 부분을 대변했다. 그리고 셜록은 그 사실을 가감 없이 받아 들였고 둘 사이는 그걸로 잘 되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중간에서 이렇게 삐딱선을 탈 줄은 정말 몰랐다.

“셜록. 그가 제 발로 걸어 나가게 만든 건 너잖아.”
“웃기지마.”
“네 그 뛰어난 하드드라이브에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한 건지는 저장해 놓지 않은 모양이지? 인간이 되길 거부한건 너지. 넌 무서웠던 거야. 네가 알고 있던 네 자신이 변하는 것을.”
“마이크로프트!!!!”

날카롭고 쇠 된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허공에 울린다. 상처 받은 동물이 울부짖는 것 같은 그 목소리는 서슬퍼런 빛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 스민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새파란 분노의 빛을 띠고 있는 눈동자 속이 텅 비어있다. 셜록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린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똑똑하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감정적인 면을 완전히 죽여버린 동생의 모습에 가슴아파하며 마이크로프트는 타이르듯 셜록에게 말했다.

“네 고독을 지켰어. 셜록. 하지만 그 댓가로 깨닫지도 못한 채 넌 네 심장을 부셔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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